▲ 부석사 석축으로 우리 민족의 우수한 석축문화를 대변하고 있다.

“한국 고미술의 예술성이 녹아 있는 석축” 
우리 선조들의 석축문화와 예술

조경렬 기자

우리 선조들은 4300여 년 동안 돌을 이용한 건축기법을 다양하게 접목시켜 왔습니다. 가장 많은 문화유적을 남긴 석물예술은 불상과 석탑, 암각화 조각 성곽 등 다양합니다. 반영구적인 돌을 재료로 사용했기 때문에 보존상태가 가장 우수합니다. 그 중에서도 독립적인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으면서 건축물에 없어서는 안 될 석조예술 분야가 바로 석축입니다.
 
석축石築이란 말 그대로 돌로 쌓은 축대를 말합니다. 석축은 종교를 초월하여 사찰이나 정자, 서원 등에 두루 쓰였으며 계층을 초월하여 궁궐과 사찰, 민가 등에 다양하게 이용되어 왔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앞의 건물들을 서로 구분하는 성벽, 담장의 기능도 맡았습니다. 즉, 석축이 없는 건축물은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석축은 현재의 우리에게 과거를 불러 세우고 증명하는 근거가 되는 의미가 있습니다. 건축물의 흔적만 남아 있는 기단을 통해 그 건축물의 양식과 더불어 조성된 시기를 짐작할 수 있는 역사성을 지닙니다.

이에 대하여 박방룡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관은 "석축에는 우리나라 고미술의 예술성이 녹아 있다. 돌이라는 재료의 속성을 존중할 줄 알며, 작품이 놓일 환경에 자연스럽게 순종하는 자세에서 오는 편안함, 사물의 이치나 섭리를 거역하지 않는 순리의 아름다움이 내포되어 있다.

이렇게 보기 전까지의 단순한 석축은 쉽게 지나치거나 보잘 것 없는 돌덩어리에 불과하다. 높은 곳의 불상이나 탑塔에는 쉽게 눈길이 가지만, 땅에 자리 잡은 석축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게 된다. 부속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어서 밟힘만 당할 뿐 눈길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해 온 게 사실이다."라고 설명합니다.

그러함에도 석축石築은 그 나름의 독특한 미학과 옛사람들의 정신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 돌이 땅의 기운을 감싸고 모은다고 여겼습니다. 산천의 기운을 믿고, 소중하게 여겼던 조상들은 이를 감싸고 증폭시키기 위해 낮은 곳을 북돋우는 방법으로 석축을 이용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형상 산이 많습니다.

그래서 경사가 심하거나 협소한 장소가 많아 건축을 할 때 공간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평지의 경우에도 건물을 높게 하여 빗물 등으로 침수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석축을 쌓았으며, 연못의 둑을 막는데 쓰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정원 안에 조경을 목적으로 설치한 연못인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했습니다.

이처럼 처음에는 단순히 공간을 확보하거나 건물이 침수되는 것을 막는 것이 목적이었으나, 나중에는 공간 확보와 더불어 건물의 외관과 어울리도록 하는 조경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양반집의 담장은 안채, 사랑채, 행랑채, 별당, 사당 등을 구분 하고 사적인 영역을 구분해 보호하는 데 매우 중요 했습니다.

고건축의 기단, 석축 묘미의 하나

석축의 일종인 기단의 용도를 살펴보면 더 가늠이 쉬울 것입니다. 기단이란 집터를 편평하게 다듬은 다음, 그보다 한층 높게 쌓은 것을 말합니다. 기단을 만든다는 목적은 묵직한 돌 들이 주는 하중을 분산시키기 위해서, 또 건물이 빗물이나 지하수에 침수를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시각적인 면에서 보면 석축을 쌓을수록 건물의 높이가 높아지니 위엄과 숭고미가 더해집니다. 더 강한 존재를 숭배하고 더 높이 올라가고픈 열망의 디딤돌이 바로 석축으로 표현된 것일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옛날에는 더더욱 위계나 권위를 건물의 높낮이로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이화여대 건축학부 임석재 교수는 "한국의 담장은 건물 종류에 따라 다양하게 변한다. 산사에서는 굳이 영역을 가를 이유가 적은 대신 각 전각들의 기단을 담 형식으로 꾸민다. 낮은 기단은 기단에 머물지만 기단이 높아지면 담과 같아진다. 건물과 건물 사이를 가르는 것이 아니라 건물을 밑에서 떠받들어 전각에 요구되는 종교적 권위를 실어준다."라고 설명합니다. 이처럼 석축은 높고 낮음이라는 상반되는 이미지, 그러나 상호보완적인 이미지를 동시에 갖습니다.

한국의 석축의 특이성은 자연석 그대로인 돌의 아름다운 자연미를 살렸다는 데 있습니다. 중국의 경우는 네모반듯하게 다듬어서 쌓는데 비해 우리 조상들은 돌덩이를 그대로 사용하거나, 정으로 쪼아내어 다듬기도 하고, 쪼갠 그대로를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돌의 속성을 잘 알고 있었고, 나무를 도끼로 깨어낼 때 그 결을 보는 것처럼 돌도 결을 보고 깨어내 그것을 다시 작고 곱게 다듬어 사용했습니다.

▲ 부석사 절 마당의 석축

초월적 세계를 재창조 하고 떠받드는 石築

사찰을 구경하다 보면 계단을 이용한 아래위로의 소통이 잦다는 걸 알게 됩니다. 이는 석축으로 인해 절 건물이 높아졌기 때문으로, 한 단 높이 올라서면 건물이나 주변의 모습이 사뭇 달라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불교문화에 기반을 둔 신라시대 사람들은 높은 석축을 쌓아서 세계를 이분화 했습니다. 하나는 온갖 번뇌와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중생이 있는 현실세계現實世界이고, 다른 하나는 부처로 대변되는 초월적 존재가 있는 이상세계理想世界입니다.

또 석축은 세계를 재구성하기도 합니다. 가람배치伽藍配置와도 관련이 많아서 건물을 높이 세우거나, 담장이 되어서 아래위로 경계를 구분합니다. 그래서 중심이 되는 절 등 시선이 집중될 곳은 시선을 모아주고, 잡다한 일상의 공간 등 시선이 가지 말아야 할 곳, 산만한 곳은 감추거나 차단하는 효과가 있게 합니다.

자연과 인공의 절묘한 조화, 浮石寺 석축

경북 영주의 부석사는 산비탈의 경사가 심한 지형에 위치해 있어서 여러 곳에 축대를 마련한 가람배치를 하고 있습니다. 바로 봉황산(鳳凰山, 818m)의 가파른 중턱을 깎고 축대를 쌓아 절터를 잡았기 때문입니다.

남쪽을 향한 ９단 석축의 높이가 서로 다르고 남쪽을 향한 축대 각도가 조금씩 다르게 조성했는데, 이것은 석축과 건물의 방향을 틀어 시선을 적절히 차단해 계단형 건물배치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통일신라시대의 아름다운 석축의 축성법입니다.

부석사에 한 번쯤 다녀온 사람들은 누구나 석축과 돌계단을 기억할 것입니다. 이 석축은 부석사를 창건할 당시 비탈을 깎고 평지를 고르면서 자연스럽게 조성된 것으로 석축의 목적은 사찰을 짓기 위한 공간 확보에 있지만 석축 돌계단 그 자체에도 상징 하는 바가 큽니다. 불가 佛家에서는 극락에 이를 수 있는 16가지 방법 중 마지막 세 가지 방법인 3품 3배관의 9품 만다라를 형상화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즉, 대한불교조계종 부석사는 천왕문에서 요사체로 오르는 세 계단이 하품 단이며, 여기서 다시 세 계단 오른 범종루 까지가 중품단, 범종루에서 세 계단을 올라 안양루 밑을 지나 무량수전 앞마당에 이르는데, 마지막 계단으로 상품 단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부석사를 찾는 이는 상징화된 돌계단과 석축을 지나면서 극락에 이르게 되는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특히 눈에 띄는 점은 반듯하게 다듬은 규격화된 돌들로 석축을 쌓지 않고, 돌의 자연 생김새를 그대로 이용해 어긋난 귀를 서로 잘 짜 맞추어 쌓았다는 점입니다. 둥글든 모가 났든 크든 작든 돌들의 본래 모양새와 개성을 버리지 않고 조화롭고 짜임새 있게 견고한 석축이 완성되었다는 미적 가치는 현대의 우리들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전해 줍니다.

일주문에서 부터 무량수전無量壽殿까지 9단의 석축을 쌓아올린 점에 대하여 박방룡 연구관은 "浮石寺 석축은 큼직한 돌들을 면바르게 맞추어 놓고 그 사이에 작은 잔돌을 끼워 넣어 허튼 층으로 쌓은 것이 주된 축조기법으로 ‘허튼쌓기’라 한다."고 말합니다.

제멋대로 생긴 크고 작은 자연석의 모양을 살려 갖가지 형태를 자연스럽게 짜 맞춰 놓아 자연과 인공의 절묘한 조합, 부조화 속의 조화에 감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그래서 浮石寺의 석축은 우리 조상들이 허튼쌓기기법으로 축조한 대표적인 축조술이라 할 수 있지요.

세월의 무상함을 이기는 石築의 영원성

가을날 낙엽 속에 묻힌 석축을 보고 있노라면, ‘오랜 세월을 이기고 옛 자취의 완전한 흔적은 이것뿐이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자신의 한 몸으로 무거운 사찰을 짊어지고 수백 년 세월도 마다하지 않고 떠받들고 있으니 말입니다.

또 나라를 지키는 성곽의 한 부분을 이루어 전쟁이라는 참화로부터 사람들을 벗어나게 해주었고, 정원의 연못은 바닥을 이루어 물이 마르지 않도록 하고, 마을이나 궁궐의 샘은 주변의 석축대를 이루며 목마른 이들의 갈증을 해소시켜 주었습니다. 또 이쪽에서 저쪽으로 연결되는 석교의 석축은 끄떡없는 돌다리가 되어 이곳과 저곳을 연결 시켰고, 마음의 소통공간까지 넓혀 주었습니다.

석축은 건물이나 석탑을 더 돋보이도록 자신은 없는 듯 밑바닥에서 하대를 자처합니다. 잘난 체 하거나 고개를 높이 쳐든 석축은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석축만큼 자아를 하대하면서 타아를 높이는 사물이 또 있을까요? 무질서한 듯 허튼쌓기를 한 돌들이 어우러진 모습, 개체의 특성을 인정하면서 함께 조화를 이루는 통일감, 허술한 듯 보이면서도 치밀한 모양새에서 우리는 석축石築 예술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여기에 한국 석축문화의 고고한 미학적 의미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