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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論] 국기(國技) 태권도의 미래는 밝은가요?
조경렬 국장  |  herald@heraldjourna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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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4.14  22: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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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論] 국기(國技) 태권도의 미래는 밝은가요? 

   
조경렬 편집국장

 


[헤럴드저널] 조경렬 편집국장= 중국의 고사에 오월동주吳越同舟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오(吳)나라의 백성과 월(越)나라의 백성이 한 배를 탔다는 의미입니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오(吳)나라와 월(越)나라는 영토문제로 전쟁이 하시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양국 백성들은 서로 죽이고 죽이며 원수를 대하듯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나라 사람들이 우연히 같은 배를 타게 되었습니다. 배를 타고 강 한가운데에 이를 즈음 갑자기 천둥번개와 폭풍우가 동시에 몰아치더니 배가 뒤집힐 듯이 흔들리며 위험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에 당황한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은 일단 이 위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일념으로 서로 협력하여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마치 한 사람의 오른손과 왼손처럼 서로 붙들고 도왔습니다.

이처럼 서로 목적과 입장이 다르더라도 위험한 상황이나 큰 뜻을 위해서는 서로 뭉치는 것을 비유해서 후세 사람들이 오월동주吳越同舟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요즘 세계태권도본부 국기원에 대한 여러 상황이 태권도인들 간에 왈가왈부(曰可曰否)로 도를 넘고 있는 듯 합니다.

왜 태권도계의 문제가 늘 우리 사회 논쟁의 수면 위를 달리는 것일까요. 태권도계에서 벗어난 일반 시민의 시각에서 가만히 들여다보자면 참으로 안타깝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궁금합니다. 지금 국기 태권도가 최대 위기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태권도인들은 인식을 하고는 있는 것일까요.

필자가 말하는 위기의식이란 일반 시민들이 태권도를 바라보는 시각과 국기(國技)로서 존중의 인식 측면에서 ‘과연 어느 정도의 긍정적 이미지와 기대감을 갖고 있을까. 앞으로 태권도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것일까?’하는 근본적인 인식입니다.

비근한 예로 가장 가까운 제 조카의 아들 초등학교 6학년짜리가 태권도 2품까지만 마치고는 도장에 나가지 않습니다. 왜 도장에 가지 않느냐고 물으니 인기가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복싱 체육관에 나가고 있답니다.

이런 예가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왜 일까요? 왜 이렇게 태권도의 저변이 흔들리고 있는 것일까요? 실력이 부족해서 인가요, 능력이 부족해서인가요?

아닙니다. 결코 아닙니다. 필자처럼 일반 시민의 시각에서 보자면 지금까지 태권도 행정 최고 책임자의 리더십 부족과 행정 시스템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봅니다.

가장 기초적인 태권도 인프라 구축을 위한 프로젝트 연구를 얼마나 하고 있는가요? 창의적인 교육 프로그램 연구가 이뤄지고 있습니까? 더 멀리 그리고 더 넓게, 태권도 플랫폼(platform) 구축을 위한 계획이 있는가요?

필자의 소견으로는 이런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부단한 노력과 창의적인 행정 시스템 구축 없이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봅니다.

태권도의 내부적인 문제에 발목이 잡혀서 국기 태권도의 미래를 등한시 하고 설계 하지 않는다면 후대에게 대단히 뼈아픈 유산을 남기고 말 것입니다.

태권도계 내부 문제의 해결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발전을 위한 지적과 비판도 중요합니다. 허나 비판과 지적에는 대안을 제시하여 토론의 멍석을 깔아야만 그 정당성이 확보 되는 것 아닐까요.

비판을 위한 비판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입니다. 해결책이 없기 때문입니다. 대안을 제시하고 행정의 최종 책임자에게 토론을 요청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가장 빠른 해결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원수지간에도 위기의 순간에는 서로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한 오월동주의 고사처럼 진정 태권도의 미래를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협력할 부분은 서로 협력하여 풀어가는 게 순리가 아닐까요.

절박한 상황에서라면 원수와도 우정을 나눌 수 있다는 마음 자세는 비단 손무(孫武)가 살았던 춘추전국시대에만 요구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비단 태권도의 도약과 저변 확대라는 큰 화두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사람들과 각별한 관계망을 형성하고 사는 지금 우리에게 경우에 따라 전략적 동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유연한 사고가 더욱 필요하지 않나 하는 담론(談論)을 제시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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