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저널] 조경렬 기자= 연일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지는 매서운 추위가 맹위를 떨치는 요즘 나에게는 독서의 계절이라. 작은 출판사를 꾸리고 있음에도 필자는 ‘좋은 책이란 무엇일까’에 늘 생각을 집중하며 산다. 아주 젊은 시절 딱딱한 법률학에 너무 치우칠 만큼 논리에 논리를 세우며 보내야만 했던 때가 있었다. 넓게는 인문학의 한 범주이기는 해도 너무 딱딱하고 사고의 공간이 제한된 학문이었다. 논리가 주는 쾌감도 있기는 하지만, 결과를 내야 하는 과정이어서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아마도 필자가 문화적, 미학적 인문학을 즐겨하는 것도 이때의 부담 때문이리라.

최근 독서를 하면서 생각에 남은 부분을 사색하는 의미로 ‘한국학과 그림’이라는 주제로 이야기 해 보기로 하겠다. 오래전 출간된 책이지만 정민 교수 외 인문학자 26인이 쓴 「한국학 그림과 만나다」라는 책을 읽고 느낀 이야기를 다루고자 한다. 여기에는 지면에서 익히 아는 학자도 있고 다양한 분야의 교수들이 모여 우리 문화에 대하여 수다를 떤 내용이다.
그림과 인문학 하면 왠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느낌, 따로 이야기해야 할 것 같은 이미지로도 비칠 수 있다. 하지만 인문학이란 범주가 없을 정도로 넓으니까 문제 될 게 없다. 오히려 자연 친화적인 별밤 아래 텐트처럼 잘 어울린다.

“설중탐매(雪中探梅)” 

조선왕조가 그 명맥을 다해 가는 조짐이 사회 곳곳에서 들불 연기처럼 솔솔 피어나던 조선 후기, 그래도 글 읽는 선비들은 유유자적(悠悠自適) 미적 탐구를 즐겨 했다. 그중 가장 으뜸이 끽다(喫茶)와 탐매(探梅)일 것이다. 그때 선비들은 추운 겨울 고상한절(高霜寒節)에 피는 매화를 지극히 사랑했다. 눈 속에 피는 매화는 그 향이 십 리 밖까지 퍼져나간다고 해서 고고한 선비의 품격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들은 추운 겨울에 매화가 핀 곳을 찾아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탐매 여행이다. 동자가 이끄는 나귀를 타고, 술이 든 호리병을 옆구리에 찬 채 매서운 찬바람을 맞으며 산자락을 이리저리 헤매는 모습을 그림으로도 남겼다. 일명 탐매도(探梅圖)이다. 
본래 탐매도는 중국 당나라 때 시인 맹호연에게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평생 은거하며 산수와 자연을 애호한 그는 특히 초봄에 장안 동쪽에 있는 파교(灞橋)를 건너가 눈이 채 녹지 않은 산속에서 처음 피는 매화[初梅]를 찾아다녔다고 한다. 이 파교심매(灞橋尋梅)의 전통은 송대 성리학의 발전과 더불어 널리 유행했다. 탐매 여행이 여유롭지 않을 때는 집 안의 분매(盆梅)에서 피는 매화로 대신하기도 했단다.

촛불 이래 매화향 찾아 매화음(梅花飮)

조선시대 선비들은 분매(盆梅)를 기르는 경우가 많았다. 글줄이나 읽는다는 선비는 정월 지나 초봄에 피는 매화를 보기 위해 애지중지 키웠다. 추운 겨울에도 소중하게 가꾼 분매가 꽃을 피우면 선비들은 벗들을 불러 함께 술을 나누며 시를 짓는 모임을 가졌다. 매화음(梅花飮)이다.
이런 매화음의 장면을 잘 그려낸 화가가 어항 화가 이유신(李維新)이다. 그는 가헌관매도(可軒觀梅圖)에서 눈이 내린 겨울날 ‘가헌(可軒)’이란 집에 여러 선비가 모여 분매를 감상하는 모습을 화폭에 담아냈다. 괴석 사이에 뿌리를 내리고 자란 매화가 꽃을 피운 모습에 선비들은 매우 기쁜 모습으로 감상하고 있다. 그림의 상단에는 천원(泉源)이라는 이의 제화시가 보인다. 

會坐孤燈下(회좌고등하)   외로운 등불 아래 모여 앉으니
梅花雪裡眞(매화설리진)   매화가 눈 속에서 참되네.
吾儕淸是性(오제청시성)   우리네 맑은 이 본성은
瘦竹與比隣(수죽여비린)   마른 대나무와 이웃하여 살고 있네.

泉源 

여기 시구(詩句) 맨 마지막 구의 ‘제(동배제; 儕)’자는 ‘린(이웃린; 隣)’자 사이를 두고 썼는데, 운에 맞지 않은 구성이다. 그런데 시 전체를 상세히 살펴보면 ‘청(淸)’자 위에 방점이 찍혀 있음을 볼 수 있다. 그 앞에 써야 할 것을 빠뜨리고 썼음을 알 수 있다. [신익철 저자의 해석]

이처럼 이유신의 가헌관매도(可軒觀梅圖)는 당시 사대부가에 선비들이 모여 한겨울 밤중에 촛불 아래 분매(盆梅)를 감상하며 여흥을 즐기던 모습을 아주 잘 표현한 화폭으로 이해된다. 이때 사대부가 선비들은 유유자적의 여유를 잃지 않았다. 부패한 관리들의 농민 수탈로 원성을 사고 있는 조선 후기(18세기) 이들은 관직에 나아가지 못했어도 늘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책 읽는 엄숙함 속에 추운 겨울 매화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즐기는 풍류를 지니고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