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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특집① 황병기 "가야금산조 새로운 경지 이뤘다"
조경렬 편집장  |  herald@heraldjourna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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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1.07  15: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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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특집① 황병기 "가야금산조 새로운 경지 이뤘다" 
황병기, 그 천상의 가야금 선율

[헤럴드저널] 조경렬 편집장

   
황병기 명인이 가야금 산조의 정남희제 황벼기류 연주(사진=황병기)

우리의 전통음악에 있어서 산조란 시나위 가락을 '장단'이라는 틀에 넣어 연주하는 기악 독주곡을 의미한다. 가야금산조의 발생 연원을 보면 19세기 말 고종 때 김창조(金昌祖)에 의하여 틀[型]이 짜여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김창조와 동년배인 한숙구(韓淑求) 심창래(沈昌來) 박팔괘(朴八卦) 등이 산조를 연주한 점으로 미루어 김창조산조를 가야금산조의 효시嚆矢로 볼 수 있다. 즉 산조가 발생하기 이전부터 시나위와 판소리가 연주되었는데 김창조가 그 가락들의 틀을 짜서 오늘날과 같은 산조의 체계를 세웠다고 볼 수 있다.

김창조 이후 많은 가야금산조의 명인이 탄생했는데, 이들은 각기 나름대로 가락의 틀을 짜서 보유자의 이름을 붙여 제(制)와 류(流)로 가야금산조를 전승하고 있다.

현재 전하는 가야금 산조의 유파를 분류해 보면 크게 전남제와 전북제 충청제로 대별되고, 전남제에는 김창조제와 한숙구제가 있는데 김창조제에 한성기류, 최옥산류, 김병호류, 강태홍류가 있다. 한숙구제에는 안기옥류, 한수동류, 정남옥류가 전해진다.

전북제에는 이영채제의 신관용류, 박한용제의 김종기류, 박학순제의 신해동류가 있으며, 충청제는 심창래제의 심상전류, 심재덕류와 박팔괘제의 박상조류와 이일선류로 나뉜다. 이와 같은 태동배경을 가지고 각 류파의 특색 있는 전통가락 가야금 산조가 전해오고 있다.

국악에 선견적 안목 소유한 황병기 명인

   
최초로 독자적 악보와 연주기법 완성한 황병기 명인

기자가 황병기(80, 전 이화여대 국악과 교수) 명인을 찾은 것은 그가 대학에서 정년퇴임을 앞두고 마지막 정규 강의를 하던 2001년 봄 학기였다.

이화여대 정문에서 오른쪽 언덕배기에 위치한 음대 건물을 찾아가기 위해 학교를 찾았을 때는 봄 햇살이 따스한 정오쯤 이었다.

연주회 준비와 대학원생들 지도로 시간에 쫓기는 그를 만나기 위해 두 차례나 인터뷰 일정 조정을 해야 했다.

"우연히 들은 가야금 산조에 매혹되어 평생 가야금을 연주하며 살아 왔다"는 황병기 명인은 연주 활동과 후진을 교육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천상의 소리 가야금 연주, 황병기 명인. 다양한 작곡과 연주활동으로 대중에게 친숙한 황 명인은 국악음반의 베스트셀러를 기록하며 다수의 창작곡이 무용으로 안무되어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황병기 명인의 음악세계는 음색이 맑고 정갈하여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다는 평을 받는 그는 "가야금을 잡고 있는 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라고 말한다.

그가 가야금을 접하게 된 계기는 6·25전쟁 중인 1951년 피난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황병기는 서울에서 태어나 학교를 다니던 중 전쟁이 터지자 부산으로 피난을 갔는데, 그 절박한 상황에서 가야금을 타고 있는 이름 모를 노인을 만나 가야금 소리에 매료되었다.

그는 피난시절의 경험으로 드디어 그해부터 국립국악원에서 가야금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김영윤에게 정악을, 김윤덕에게 산조를 배워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가야금 연주로 전국 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을 만큼 천부적 재질을 타고났다.

그가 가야금을 익히던 시기는 한국전쟁으로 인해 사회적 혼란과 국악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었던 때인데, 이러한 시기에 중학생의 어린 나이에 국악을 배우겠다며 가야금을 들고 다닐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선견적 안목과 우리 전통가치 국악에 대한 깊은 애착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대학에서는 국악이 아닌 서울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하며 계속 가야금을 배워 주위의 만류와 따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외길을 걸어 온 특이한 이력의 황병기 명인. 그의 이 같은 국악 사랑이 정남희제 황병기류라는 새로운 가야금의 경지를 이뤄냈다.

정남희제 황병기류 가야금산조 완성

황병기 명인은 학생시절부터 국립국악원에서 가야금 공부로 실기와 이론을 겸비한 예술가의 길을 걷게 되고 이 과정을 통해 훗날 홀로 작곡과 연주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것. 그가 홀로 작곡의 길을 걸었다는 말은 두 가지 뜻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하나는 그의 이전에 하지 못했던 가야금 독주의 지평을 열었다는 것이다.

그는 오선지에 기보한 최초의 독주곡 작곡자이며, 동시에 가야금 독주곡의 양식을 제시한 첫 국악 작곡가다. 가야금의 성능과 표현력, 기능과 예술성 표출의 가능성을 잘 알고 있는 그였기에 가야금 곡의 양식을 만들어 내기에 가장 적합한 작곡가였다.

또 하나는 그가 체계적인 작곡 훈련이나 창작 학습을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술적 작품으로 인정할 만큼 수준 높은 가야금 독주곡을 만들어냈다는 점이 경이롭다.

황병기 명인은 그의 개성 있는 작곡법에 의해 1962년에 작곡한 <숲>으로부터 <가을>, <석류집>, <봄>, <침향무>, <비단길>, <영목>, <전설>, <밤의 소리>, <남도환상곡>과 1991년의 <춘설>에 이르기까지 12곡 모두가 일관되게 스스로 터득한 내성적 개성이 침잠沈潛되어 있다.

황 교수는 "일본의 경우는 전통기법을 그대로 전수 받아 가락 하나도 틀림이 없이 연주하는 것이 특징이라면, 우리나라의 가야금 산조는 스승에게서 배워 다시 자기의 독특한 음악 선율을 더하여 창작으로 이어가는 것"이라며 자신의 음악세계가 정남희제를 따르면서도 자기만의 개성이 노정 되어 있음을 시사했다.

그의 음악이 거부감 없이 편안하게 다가오는 것은 듣는 이에게 새로운 음악이 주는 생소함이나 이질감 없이 전통음악의 어느 한 양식의 음악을 듣는 듯한 친숙감을 제공한다. 거기에는 음(音) 하나하나가 시김새를 갖거나 기법을 달리하는 선율로써 소리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힘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음악적 특징은 음색이 청아하고 고졸한 격조가 느껴지는 가야금산조로 '정남희제 황병기류 가야금 산조'의 가장 큰 특색이라는 점이다.

황병기 명인은 고령임에도 꾸준한 공연 활동을 하고 있다. 황 명인이 2015년 12월 25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에서 '유니세프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황병기 음악의 밤' 공연을 펼쳤다.

이 음악회는 한 해 동안 세계 어린이들에게 사랑을 보내준 유니세프 후원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달하고자 마련됐다. 황 명인은 1991년 결성된 유니세프 문화예술인 클럽의 회원으로 유니세프 사업을 지원하기 시작해 1996년부터 유니세프의 음악부문 특별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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