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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의 베스트셀러 '무진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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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6.17  16:3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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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의 베스트셀러 '무진기행'

 

몽환적 소설 김승옥의 "무진기행霧津紀行"


아내의 권유로 '나'는 무진으로 떠난다. 젊고 부유한 미망인과 결혼을 했고, 얼마 후 제약회사 전무가 될 서른세 살의 '나'는 어머니의 묘가 있고 더 젊은 날의 추억이 있는 무진으로 간다. 짙은 안개, 그것은 무진의 명물이었다. 과거에도 무언가 새 출발이 필요할 때면 무진에 오곤 했었다. 그러나 늘 어두운 골방 속에서의 화투와 불면과 수음, 그리고 초조함이 있었을 뿐이다.

무진에 온 날 밤, 중학 교사로 있는 후배 '박'을 만난다. 그와 함께, 지금은 그곳 세무과장이 된 중학 동창 '조'를 만난다. 그는 '손금이 나쁜 사내가 스스로 손금을 파서 성공했다.'는 투의 얘기에 늘 감격해 하던 친구다. 거기서 하인숙이라는 음악 선생을 소개받는다.

대학 졸업음악회 때 '나비 부인'의 아리아 '어떤 개인 날'을 불렀다는 그녀는 술자리에서 청승맞게 유행가를 부르고, 둘만이 함께 있을 때 무진에서 자신을 구원해 줄 것을 '나'에게 간청한다. '나'는 그녀에게서 과거의 자신을 발견한다. 다음날 만나기로 약속한다.

이튿날, 어머니 산소에 다녀오는 길에 방죽 밑에서 술집 여자의 시체를 본다. 바다로 뻗은 방죽, 거기 '나'가 과거에 폐병으로 요양했던 집에서 하인숙과 정사를 갖는다. 그녀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끝내 말하지 않는다.

다음날 아침, 아내로부터 온 급전(急電)이 과거의 의식에 빠져 있던 '나'를 깨운다. 하인숙에게 사랑한다는 편지를 쓰나, 곧 찢어 버린다. 이제는 영원히 기억의 저편으로 무진을 묻어 두기로 결심하면서 '나'는 부끄러움을 느끼며 그 곳을 떠나 서울로 상경한다.

김승옥의 무진기행霧津紀行은 이상과 현실 사이의 허무주의적 고뇌를 무진의 ‘안개’라는 매개체를 통해 말하고 있다. 이 작품은 일상을 벗어나고 싶은 보편적 인간 심정을 표출한 서정적 이야기이다.


[본문묘사]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 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 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恨)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女鬼)가 뿜어내놓은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헤쳐 버릴 수가 없었다.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놓았다. 안개, 무진의 안개, 무진의 아침에 사람들이 만나는 안개, 사람들로 하여금 해를, 바람을 간절히 부르게 하는 무진의 안개, 그것이 무진의 명산물이 아닐 수 있을까! 버스의 덜커덩거림이 좀 덜해졌다. 버스의 덜커덩거림이 더하고 덜하는 것을 나는 턱으로 느끼고 있었다.

나는 몸에서 힘을 빼고 있었으므로 버스가 자갈이 깔린 시골길을 달려오고 있는 동안 내 턱은 버스가 껑충거리는데 따라서 함께 덜그럭거리고 있었다.

턱이 덜그럭거릴 정도로 몸에서 힘 을 빼고 버스를 타고 있으면, 긴장해서 버스를 타고 있을 때보다 피로가 더욱 심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러나 열려진 차창으로 들어와서 나의 밖으로 드러난 살갗을 사정없이 간지럽히고 불어가는 유월의 바람이 나를 반수면상태로 끌어넣었기 때문에 나는 힘을 주고 있을 수가 없었다.

바람은 무수히 작은 입자(粒子)로 되어 있고 그 입자들은 할 수 있는 한, 욕심껏 수면제를 품고 있는 것처럼 내게는 생각되었다. 그 바람 속에는, 신선한 햇볕과 아직 사람들의 땀에 밴 살갗을 스쳐보지 않았다는 천진스러운 저온(低溫), 그리고 지금 버스가 달리고 있는 길을 에워싸며 버스를 향하여 달려오고 있는 산줄기의 저편에 바다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소금기, 그런 것들이 이상스레 한데 어울리면서 녹아 있었다.

햇볕의 신선한 밝음과 살갗에 탄력을 주는 정도의 공기의 저온, 그리고 해풍(海風)에 섞여 있는 정도의 소금기, 이 세 가지만 합성해서 수면제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그것은 이 지상(地上)에 있는 모든 약방의 진열장 안에 있는 어떠한 약보다도 가장 상쾌한 약이 될 것이고 그리고 나는 이 세계에서 가장 돈 잘 버는 제약회사의 전무님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누구나 조용히 잠들고 싶어하고 조용히 잠든다는 것은 상쾌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하자 나는 쓴웃음이 나왔다. 동시에 무진이 가까웠다는 것이 더욱 실감되었다. 무진에 오기만 하면 내가 하는 생각이란 항상 그렇게 엉뚱한 공상들이었고 뒤죽박죽이었던 것이다.
 
다른 어느 곳에서도 하지 않았던 엉뚱한 생각을, 나는 무진에서는 아무런 부끄럼없이, 거침없이 해내곤 했었던 것이다. 아니 무진에서는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어쩌고 하는 게 아니라 어떤 생각들이 나의 밖에서 제멋대로 이루어진 뒤 나의 머릿속으로 밀고 들어오는 듯했었다.

여기에서 묘사된 무진은 순천만이 있는 순천을 의미한다. 공간적 배경이 서울에서 순천으로 옮겨져 이야기가 진행된다. 산과 들을 삥둘러 싸버리는 '무진의 안개'라는 몽환적 매개체를 통해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갈등을 드러낸다.

주인공인 '나'가 서울을 떠나 무진으로 갔다가 다시 서울로 돌아온다는, '떠남→추억의 공간→복귀'의 여로(旅路) 구조를 가지며, 감각적이고 섬세한 언어 구사와 문체가 돋보이는 작가의 대표작이다. 그 여정에서 '나'는 더 젊었던 시절의 고뇌를 만난다.

즉, 무진의 골방 안에서의 불면의 밤과 수음, 담배 꽁초와 편도선, 육이오 전쟁의 상처, 우편 배달부를 기다리던 초조 등 어둡던 청년 시절을 다시 떠올리는 것이다.

일상과 꿈, 현실과 몽환(夢幻)이라는 대립적 가치를 '아내-인숙', '서울-무진'의 틀로 설정하여, 일상을 벗어나고 싶어하는 현대인의 일탈(逸脫) 심리를 보여 주고 있다.

이 소설에는 두 가지 공간이 있다. 하나는 아내와 집이 있는 서울이라는 세속적이지만 현실적인 가치의 공간이고, 다른 하나는 고향 무진으로 나른하고 축축한 몽환의 세계이다. '나(윤회중)'는 추억에 이끌려 무진에 갔다가 2박 3일의 여정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다. 즉, 과거 회상적 감상(感傷)을 떨치고 현실 세계인 ‘나’의 책임이 주어진 현실로 회귀하는 것이다.

작가 김승옥은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유년시절을 순천에서 보냈다. 1941년 일본 오사카 태생에서 태어났다. 해방 후 귀국하여 전남 순천에서 살았다. 순천중학과 순천고를 나와 1960년 서울대 문리대에서 불문학을 전공했다.

작가는 1962년 단편 『生命演習』이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하였다. 당시 그의 출현은 문단에서 하나의 놀라움으로 받아들여졌고, 특히 1964년에 발표한 『霧津紀行』은 지금도 한국 현대문학사상 가장 탁월한 단편소설로 꼽히고 있다.

1980년대 시대적 상황 속에서 연재 소설을 중단했던 그는 이듬해 종교적 체험과 함께 결정적으로 절필하였다. 그 후 20년. 2000년대로 건너온 그는 다시 글을 쓰고 있다는 소식이다. 한 때 세종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강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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