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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 숲 천혜의 비경 보려면 아침가리로 가라열목어가 한가로이 계류를 유영하는 계곡
조경렬 편집장  |  herald@heraldjourna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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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0.03  22:2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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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렬 기자의 생태르포]

계곡 숲 천혜의 비경 보려면 아침가리로 가라
열목어가 한가로이 계류를 유영하는 계곡   
우리나라 계곡 숲의 절정…인제 아침가리골

조경렬 편집장

   
강원도 인제의 아침가리골 백패킹

장마의 끝을 붙잡고 시름하던 몇 해 전 8월 초 우리나라의 계곡 숲으로 그 깊이와 태곳적 신비의 비장함이 숨어 있는 강원도 인제 기린면의 아침가리골을 찾았습니다. 이른 새벽에 도착한 계류의 입구를 터벅터벅 걸어서 월둔2리 마을의 월둔교에 도착했습니다.

어두움에 잠겨 물소리만 요란한 계곡 숲의 발목에 이르자 나무들이 이른 새벽을 베고 누워 있다 우우 소스라치게 놀라며 일어섰습니다.

도심처럼 말복의 날씨가 무덥다기보다는 숲이 뒤덮고 있는 신령스러운 기운이 오히려 살갗의 땀샘을 움츠러들게 했습니다. 그만큼 숲이 우거져 하늘을 볼 수 없고, 계곡은 깊었습니다. 한여름 짙은 초록의 숲이 주는 싱싱한 공기를 주어 마시며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계곡에는 1급수의 맑은 계류에서만 사는 열목어가 떼 지어 한가로이 유영하며 계곡의 여름을 나고 있을 것입니다.

아침가리의 시발점인 내린천 상류의 인제 개인산과 방태산 주변에는 '3둔 4가리'라고 하여 아주 오래 전부터 재앙을 피할 수 있는 곳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이곳은 물, 불, 바람 이렇게 세 가지 재난을 피할 수 있는 삼재불입지처(三災不入之處)로써 난세에 숨어 살만한 피난처라고 <정감록>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삼둔'은 산속에 숨어 있는 평평한 둔덕이라는 뜻이고 '가리'는 겨우 밭을 갈아먹을 수 있을 정도로 좁고 깊은 골짜기라는 뜻입니다. 이렇듯 깊은 산속에 터를 잡은 3둔 4가리로 들어가려면 협곡을 통과하거나 깊은 계곡을 건너야 합니다. 그 3둔이 살둔 달둔 월둔이고, 4가리는 아침가리 곁가리 적가리 연가리골을 말합니다.

   
협곡에 길이 없으면 계류를 따라 걷는 백패킹을 즐긴다
   
바지를 계류에 맡기고 걷는 맛은 여름철 계곡 산행의 백미이다

아침가리골 계류는 구룡덕봉(1,388m) 기슭에서 발원하여 숲속 계류를 형성하며 흐르다 방태천으로 들어갑니다. 말하자면 구룡덕봉 동쪽 사면의 월둔고개 근처에서 발원해 조경동 옛 마을을 지나 진동리 갈터마을 앞에서 방태천과 합류하는 약 15km에 이르는 물줄기입니다.

전 구간이 청정하지만 그중에서도 하류지역의 4~5km 구간은 특히 옥빛 소(沼)와 아담한 폭포, 넓은 계류가 흘러 원시 자연미가 그대로 남아있어 사색하며 하루를 보내기에 참 좋은 곳입니다.

그래서인지 흔히 아침가리골이라 하면 하류지역의 4~5km 구간만을 말하기도 합니다. 옛날에는 이 물줄기에 어른 팔뚝만한 열목어가 많았다고 합니다. 지금은 그렇게 큰 열목어를 보기는 힘들지만 계곡 깊은 물엔 아직도 열목어가 많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열목어는 1급수의 차가운 물에만 사는 계곡 물고기 입니다. 상류는 월둔·연가리·방동약수를 잇는 임업도로와 인접해 있지만 하류로 갈수록 한적하며 원시림을 느끼게 하는 골짜기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수량이 많은 장마철에는 탐사를 하지 않는 게 상식이다
   
선두의 탐사대장을 따라 이동하는 게 안전하다

아침에만 밭을 갈 수 있다는 조경동

사람의 손때가 묻지 않아 맑은 물에서는 열목어가 서식하고, 수달(천연기념물 330)·족제비·하늘다람쥐(천연기념물 328) 등 희귀동물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정감록(鄭鑑錄)>에는 '삼둔사가리'를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사람이 살 만한 계곡 가로써 난리를 피해 숨을 만한 피난처로 홍천군 내면의 살둔, 월둔, 달둔과 인제군 기린면의 아침가리, 연가리, 적가리, 명지거리(결가리)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말입니다. 아침가리란 계곡이 하도 깊어 아침에만 밭을 간다는 뜻으로 한자어로 조경동(朝耕洞)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한때 화전민들이 살았지만 지금은 폐교된 방동초등학교 조경분교와 텅빈 마을만이 옛 흔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지금은 폐교에 사람이 살고 있지만 인적은 끊긴지 모랜듯 적적했습니다. 계류와 깊은 숲을 갈라 간헐적으로 끊기고 이어진 산림도로를 따라 트래킹을 즐기며 숲이 주는 고요함과 엄숙함을 마음껏 느껴 봅니다.

문화의 흔적은 거의 맛볼 수 없는 곳 아침가리골. 불편함이 오히려 편안한 안식을 더해 주는 오지마을에는 사람이 살기 위해서 꼭 갖출 것만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런 오지마을 입구의 진동2교 주변에서 시작되는 백패킹은 열목어와 나무와 바람을 친구 삼아 한적하게 계류를 따라 걷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많은 백패커들이 백패킹의 초입을 아침가리골이 방태천에 합류하는 갈터마을 앞 섶다리에서 시작합니다. 여기서 방태천에 걸린 섶다리를 건너면 곧바로 낙엽송 군락을 지나 아침가리골로 들어서게 됩니다. 계곡의 산길은 그다지 뚜렷한 편은 아니지만 무더운 여름에는 굳이 길만 고집할 필요는 없습니다. 계곡을 건너고 바위를 오르며 내가 가는 길이 곧 길이기 때문입니다.

걷다가 길이 희미해지면 계곡을 건너거나 계류에 첨벙첨벙 몸을 적시며 올라가면 됩니다. 여름날 아침가리골 백패킹의 백미는 이렇듯 수시로 물길을 건너는 즐거움입니다. 그래서 여름철이 아니고서는 아침가리를 탐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스노클링 장비 없이는 말입니다. 계류의 물이 여름 지나면 금세 차가와지기 때문입니다.

   
계곡에 수량이 많은 경우에는 탐사대장의 리드에 따라 자일을 이용해 이동하기도 한다
   
아침가리골은 물이 맑고 차서 열목어 서식지로 알려져 있다
   
계류를 첨벙첨벙 걷는 것은 여름 백패킹의 즐거움이다

월둔고개에서 조경분교에 이르는 삼십 리 길

하지만 필자 탐사 팀은 홍천군 내면 광원리에서 월둔 다리를 건너 마을을 지난 다음 월둔 고개로 오르는 길을 택했습니다. 월둔고개를 새벽에 넘으니 연가리 입구가 나오고 조경동 약수터가 나옵니다.

이렇게 계류 옆으로 난 임도를 따라 터벅터벅 산길을 걸었습니다. 산속에서 소나기를 만나기도 합니다. 문명의 일상에서는 비를 맞는다는 것이 부담스럽고 마음도 편치 않지만 누구도 없는 깊은 산속을 걸으며 소나기를 맞는 것이 오히려 낭만적입니다. 이렇게 처벅처벅 12km 쯤 가니 문득 계곡이 넓게 트이면서 민가가 나타나고 채마밭이 나왔습니다.

사람이 살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폐가가 있는 채마밭에서 더 내려가니 방동분교가 나오고, 한 채의 민가와 콘크리트로 만든 조경동 다리가 나왔습니다. 이곳에서 부터 출발한 계류가 방태천과 합류되는 갈터마을까지가 바로 아침가리골 하류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홍천군 내면 광원리에서 출발해 월둔고개~연가리~조경동 약수~조경분교~조경동다리~아침가리골~갈터마을로 내려오는데 10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상류인 연가리는 풍치가 하류부 만큼 빼어나지는 않지만 흔한 전신주 하나 없이 깊디깊은 오지의 정취를 한껏 누릴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오지 마을을 찾을 때와 같은 느낌을 잠시 맛볼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오지입니다.

그러나 이 코스는 약 20km에 9~10시간 이상 걸리는 코스이므로 하루에 탐사하기엔 무리가 없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날 새벽부터 무박으로 이 코스를 백패킹 하는 경우가 많지만 최근에는 휴식년제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강원도 오지마을의 정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인제 아침가리골. 하지만 이곳은 성하의 여름 풍경뿐만이 아니라 오색 단풍으로 물들었을 때의 가을 정취도 매우 빼어납니다.

   
갈터마을 입구의 아침가리골 푯말

만약 여름에 일정을 잡지 못했다면 낙엽 휘날리는 늦가을에 한번 가 봐도 후회하지 않을 듯 했습니다. 굽이굽이 돌아가는 단풍 가득한 산길은 무릉도원으로 들어가는 길목처럼 신비롭고, 열목어 헤엄치는 맑은 물에 드리워진 단풍의 그림자가 환상적일 듯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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