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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아래 유유자적 서 있는 천태산 망탑1300년의 장구한 역사 새긴 영국사寧國寺 은행나무
조경렬 기자  |  herald@heraldjourna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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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9.15  12: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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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의 인문학]

"구름 아래 유유자적 서 있는 천태산 망탑"

[헤럴드저널] 조경렬 기자= 추석 연휴가 무료할 즈음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진다. 바람 따라 물길 따라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사념의 공방에서 벗어나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다.

인간은 늘 변화를 추구한다. 새로운 세계를 보고 듣고 느끼고 싶은 충동, 그것이 바로 여행의 충동이다.

   
천태산의 초입에 자리잡은 나지막한 봉우리에 망탑이 우뚝 서 있다(사진=조경렬)

올 추석의 끝자락에 충북 영동의 천태산으로 가을맞이 산행 길에 나섰다. 지난 여름 사상 최고의 무더위가 지나 간 자리에 벌써 쑥부쟁이가 피고, 잔대, 벌개미취, 용담 그리고 가을의 전령 구절초가 무더기로 피어나고 있다.

구절초는 우리 산하 어느 산골에서나 뉘엿뉘엿 피어난다. 그 하얀 꽃망울이 옛 추억을 그리워하게 한다. 그래서 섬진강 시인 김용택은 이렇게 노래했다.

하루 해가 다 저문 저녁 강가로
산그늘을 따라서 걷다 보면은
해 저무는 물가에는 바람이 일고
물결들이 밀려오는 강기슭에는
구절초꽃 새하얀 구절초꽃이
저리도 잔잔히 피어있네

구절초꽃 피면은 가을 오구요
구절초꽃 지면은 가을 가는데
하루 해가 다 저문 저녁 강가로
서늘한 저녁 달만 떠오르네
구절초꽃 새하얀 구절초꽃에
달빛만 하얗게 모여드네
                        -김용택의 「구절초꽃」 전문

   
산행이 시작되는 천태동천을 따라 오르는 길

고속도로를 벗어나 영동 양산면 산골 마을을 지나니 감이며 대추 밤이 붉게 익어간다. 지난 여름 혹독한 가뭄과 무더위를 이겨낸 생명력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들녘을 지나 천태산 계곡으로 접어드니 영국사 초입이다.

충북 영동군 양산면 누교리 영국사 입구에 닿았다. 사찰로 가는 길은 천태동천에서 망탑봉으로 오르는 길과 3단폭포로 오르는 두 갈림길이 있다.

3단폭포는 망탑을 머리에 이고 있는 망탑봉 계류를 타고 떨어진다. 천태동천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계류를 따라 오르면 아기자기한 진주폭포가 나오고 그 위에 망탑봉이 보인다.

천태산으로 오르는 바른 길. 천태동천의 청아한 물소리를 들으며 삼단폭포를 지나면 영국사 일주문에 닿는다. 일주문에서 보면 커다란 은행나무가 코앞이다. 둘레가 11m의 은행나무는 가지 하나가 고개를 푹 떨구어 땅에 뿌리를 내린 채 절집 앞에 우뚝 서 있다.

   
영국사 은행나무는 신라 문무왕 8년에 심어졌을 것으로 추정되어 약 1300년의 수령을 자랑한다.

이 영국사 은행나무(천연기념물 223호)는 사찰 창건 당시인 신라 문무왕 8년(668)경에 심어졌을 것으로 보여 수령이 약 1300년 정도로 추정된다.

커다란 나무 아래에는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소원성취 리본이 수많은 이들의 소원을 빌고 있다. 소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은 자신의 소망이 이뤄지기를 그 무엇엔가 의지해 빌기를 즐겨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태초의 종교적 행위였던 태양신이나 구름신, 바람신, 산신 등 자연에 빌었던 주술적 샤머니즘의 하나가 아닐까.

아무튼 1300년의 세월 동안 저렇게 우뚝 서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으니 신神이 아니고 무엇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살아 있는 화석, 이 은행나무를 심었을 우리 선조는 후세들이 이 나무에게 무엇인가 바라거나 소망 빌기를 바랐을 지도 모른다.

1300년 전 당시 선조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 은행나무의 울울창창한 기운이 상서롭다. 필자도 분홍빛 리본을 골라 소원을 적어 매달아 본다.

이제 은행나무를 지나 사찰의 오른쪽 허리를 돌아 산행 길로 접어든다. 오늘 천태산 산행 길은 천태동천-삼신 할미바위-3단폭포-영국사 일주문(매표소)-은행나무-암벽 구간-681봉-천태산 정상(714.7m)-조망바위-남고개-영국사-망탑봉으로 이어지는 코스이다.

   
영국사 오른쪽 산행의 시작으로 70m 직벽을 타고 올라야 한다.

총 거리 6.8㎞에 매우 단출한 산행이다. 비교적 짧은 코스지만 군데군데 암벽을 포함한 난구간이 많아 체력 소모가 만만치 않다. 특히 밧줄을 타고 오르는 구간이 많아 쉽게 볼 산행이 아니다.

정상을 오르는 길은 영국사 오른쪽 능선을 오르면 약 70도의 급경사 암벽이 나오고, 옆으로 돌아서면 암벽 구간이 서너 군데 더 있다. 첫 번째 암벽은 약 75m의 직벽에 가까운 코스로 로프를 타고 올라야 한다.

짜릿한 릿지의 느낌을 맛보며 바위 능선을 오를 수 있다. 그렇게 한 시간 반 정도를 오르니 안부 갈림길에 닿았다.

여기에서 약 200m 정도를 더 올라야 정상이다. 정상에서는 서쪽으로 서대산, 남쪽으로는 성주산과 그 너머로 멀리 덕유산이 조망된다.

   
정상석 앞에서 사진 촬영을 즐기는 산행객들.

한동안 정상석에서 사진을 촬영한다고 줄을 잇고 있던 한 무더기 등산객이 지나간 자리, 대학생들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사진 촬영을 부탁한다.

요즘 젊은이들이 산행을 하는 것을 보면 필자는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침침한 PC방에 박혀 게임이나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자연 속에서 심신을 수련하는 산행이 얼마나 좋은가.

정상에서 내려와 조망바위에서 내려다 본 영국사는 천태산 아래 작은 분지에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다. 신라 때 창건된 영국사는 고려 문종의 넷째 아들인 대각국사大覺國師가 크게 중창한 뒤 국청사國淸寺라 불렀다.

이후 고려 공민왕 때 지금의 영국사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전해진다. 천태산은 큰 산은 아니지만 능선을 따라 암벽으로 이뤄진 전망대가 곳곳에 있어 시원한 눈 맛을 즐기며 산과 들과 숲을 보면서 산행을 즐길 수 있다.

조망바위에서 내려와 남고개로 향하는 길에 아름다운 소나무와 바위를 만났다. 마치 동양화의 화폭처럼 거북등 같은 소나무의 껍질과 바위 색이 거무튀튀한 게 서로 어우러져 필자를 화들짝 놀라게 했다.

산행을 하면서 자연의 신묘한 형상들을 만날 때마다 필자는 마치 예술가가 된 마냥 가슴이 설렌다. 누구도 구상하지 못할 한 폭의 동양화를 필자가 그려낸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하산 길 능선에서 만난 잔대꽃. 소나무 밑 바위틈에서 자란 잔대꽃이 보라빛으로 빛난다.

이제 남고개를 기점으로 오솔길을 따라 가면 영국사가 나온다. 작은 절집이지만 은행나무만큼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다.

절집과 은행나무를 지나면 이제 망탑봉의 망탑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사찰 매표소에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작은 산봉우리가 앞을 막는다. 망탑봉이다.

천태산 영국사는 홍건적의 2차 침입 때 송도를 함락당한 고려의 공민왕이 국태민안을 기원하며 머물렀던 곳이다. 공민왕은 이때 고향을 그리워하는 노국공주(원나라 위왕의 딸)를 위해 망탑봉에 별채를 지어 향수를 달래도록 했다고 전한다.

그러고 보니 작은 별채가 들어설 만한 제법 넓은 공간이 탑 앞에 있다. 망탑은 커다란 바위 위에 3층 석탑을 조성한 고려시대 탑으로 멀리 천태산 주봉 능선과 잘 어우러진다.

   
정상을 뒤로하고 조망바위에서 바라 본 원경. 멀리 겹겹으로 둘러싸인 산들의 곡선이 아름답다. 천태산! 높지 않은 산이지만 결코 낮은 산도 아니다. 천태산이 낮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곳곳에 스며든 전설과 암벽의 위용이 있기 때문이리라.(사진=조경렬)

바로 옆에는 상어바위와 물고기 모양의 바위가 나란히 똬리를 틀고 있는데 그 형상이 마치 일부러 조성한 조각품 같아 신비스럽다.

이곳 망탑의 전설은 참으로 애처로운 공민왕의 설화가 녹아 있다. 고려시대, 홍건적의 침입으로 송도松都(지금의 개성)를 빼앗긴 공민왕은 왕비인 노국공주와 조정의 육조 대신들과 함께 남으로 가던 피난길에 현재의 영국사가 있는 충북 영동군 양산면을 지나게 되었다.

석양이 곱게 물들고 산새도 집을 찾는 해질녘, 인적 드문 계곡 어디에선가 "데~엥 뎅, 데~엥 뎅"하고 장엄한 범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불심 깊은 공민왕은 행차를 멈추고 말에서 내렸다. 피난길에서 종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니 그 종소리가 처량하게 들려 가슴에 사무쳤다. 왕은 대신들에게 그 종소리가 어디서 들리는지 알아보도록 하였다.

신하들이 말하기를 멀지 않은 국청사에서 울려오는 소리이며, 국청사는 신라 진평왕 30년 원광법사가 창건한 절로 대각국사 의천이 천태교학을 강하고 교선일치를 설파한 절이라고 했다.

임금은 국청사에서 국태민안 기도를 드려야겠다고 생각하여 절로 향했다. 국청사에 도착한 왕은 왕비 노국공주에게 옥새를 맡기며 절 건너편 망탑봉에 별채를 지어 기거케 했다.

왕은 육조 대신들과 함께 법당에서 국태민안을 염원하는 백일기도에 들어갔고, 왕비도 처소에서 나라의 안녕을 서원하며 부처님께 간곡히 기도를 했다.

임금은 100일 기도를 올리면서 홍건적을 물리치도록 명했고, 마침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던 홍건적은 제대로 싸우지 못하고 물러나고 말았다. 승전으로 태평성세를 맞은 공민왕은 부처님의 가피에 불심이 더욱 깊어진다.

노국공주와 함께 환궁을 서두르던 공민왕은 국청사 부처님의 큰 보살핌으로 나라가 위기에서 벗어나고 평국안민平國安民케 되었다 하여 절 이름을 국청사에서 영국사寧國寺로 바꾸게 하였다고 한다.

망탑봉을 내려와 천태동천에 산행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씻는다. 모가 난 바위틈을 쪼랑쪼랑 흐르는 계곡물이 칼칼하고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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